일본의 경제 동향에 대한 최근 소식을 살펴보면, 달러의 강세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 요인 외에도, 일본 내부에서 엔화가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존재합니다.
작년부터는 일본은행이 YCC(양적완화 정책) 폐지나 금리 인상 등을 언급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변화는 춘투(춘계 노사협상)가 지나야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습니다. 매년 3월에는 춘투라 불리는 노사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지난 해에는 일본 노조가 2023년의 인플레이션을 근거로 임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며, 정부가 노조 편을 들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너무 낮거나 높으면 문제가 발생하는 민감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들은 일반적으로 연 2%의 안정적인 인플레이션 목표를 가지고 경제를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0년 이상 2% 인플레이션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베 총리 시절부터 무제한 돈풀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2023년에야 기다리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일본은행 입장에서는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은 잡아야 하지만, 다시 과거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을 올리는 것을 통해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정부가 기업에 임금 인상을 압박하기 전에, 기업들이 화끈하게 반응했습니다. 도요타, 일본제철, 닛산 등 주요 대기업들이 노조의 임금 인상안을 대부분 수용한 것입니다. 특히 일본제철은 50년 만에 최대 수준인 월 3만 엔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노조에 3만 5천 엔의 인상을 해주며 임금을 14.2% 올려주기로 했습니다. 도요타 역시 25년 내 최대 폭의 인상분과 사상 최대 보너스를 제시했습니다. 이외에도 혼다, 마쓰다, JFE 스틸, 고베제강소, 히타치제작소, 파나소닉, 미쓰비시 계열사, NEC, 후지쓰 등 굵직한 기업들이 노조 요구안을 모두 수용했습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임금 인상으로 인해 일본은행이 움직일 여건이 갖추어졌고, 결국에는 마이너스 금리와 YCC 폐지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정책 변화를 위해선 임금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이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대기업들이 화끈하게 응답을 해준 셈입니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17년간 금리 인상 운전을 하지 않은 초보운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리를 인상하면서도 국채 매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마치 악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은 듯한 모습입니다. 17년간 운전을 안 하던 장롱면허라 갑자기 차가 튀어나갈 것이 무서워 브레이크에 발을 떼지 못한 것입니다. 브레이크 페달을 놓고 악셀을 누른 발에 힘을 주기 시작할 때가 엔화가 오르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언제 어떤 규모로 일어날지 여부입니다. 3월 19일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은 엔화 가치뿐만 아니라, 일본 증시와 전 세계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일본인의 해외증권 투자가 10년 새 70%나 증가하여 531조 엔 규모에 달하는 상황에서, 아일랜드, 호주, 네덜란드, 미국, 영국 등 주요국 채권의 상당 부분을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가 1%에 도달하면 환리스크가 있는 해외투자보다 국내 국채투자 수익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IMF 역시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조정하면 호주, EU, 미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자금 유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행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는 금리 급등일 것입니다. 일본은 현재 1,243조 엔의 부채를 지고 있어 금리가 급등하면 정상적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의미하는 '출구전략'이라는 표현 대신 '금융완화 수정'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브레이크를 언제 풀지가 관건입니다.
두번째 관전 포인트는 일본 내부의 '2024년 문제'입니다. 2024년 4월 1일부터 시작된 물류 문제를 말하는데, 작년에 한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 2019년부터 한국의 주52시간제와 비슷한 법안을 시행했는데, 일반 근로자의 연간 초과근무를 720시간으로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운송업, 의료, 건설업은 파장이 커 5년간 유예기간을 두었습니다. 2024년 3월 말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전 업종에 초과근무 960시간 상한제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위반 시에는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30만 엔 이상의 벌금이 부과되는 등 처벌 수준이 높습니다. 이에 더해 일본 후생노동청이 '자동차 운전자 노동시간 개선 기준'을 시행하여, 트럭 기사의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확대했습니다. 초과근무 제한에 휴식시간 의무화가 겹치면서, 트럭 기사 입장에서는 소득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타 업종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며, 임금 인상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법 시행 유예기간 동안 일본은 대책을 준비해 왔습니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간 주요 고속도로인 신도메이에 완전 무인 자율주행 트럭 전용로를 지정했습니다. 이 고속도로는 24시간 통행량이 가장 많은 대동맥인데, 올해부터 운전사 없는 무인 트럭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인 트럭 외에도 선박과 철도 수송량을 두 배로 늘리는 작업도 병행되었습니다. 5년간 철도 규격과 항만 구조를 개선했는데, 기존에는 터널 높이가 낮아 표준 컨테이너를 실은 열차가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일본은 표준보다 30cm 낮은 독자 규격 컨테이너를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퀴를 소형화한 저상 화물열차를 만들어 표준 컨테이너를 바로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만도 개선되어 컨테이너선에서 바로 철도로 컨테이너를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전에는 컨테이너를 트럭에 내린 후 역에서 다시 규격을 바꿔야 했던 비효율을 개선한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비효율이었지만 일본은 루틴을 쉽게 바꾸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이외에도 신칸센에 화물 수송 기능을 추가하는 등 물류 개선에 힘썼습니다. 신칸센으로 화물을 운반하면 속도가 빨라지는데, 예를 들어 도쿄에서 700km 떨어진 아오모리 특산 가리비를 당일 배송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새로운 중형 트럭도 나왔습니다. 이스즈 자동차가 3.5톤 미만 디젤 트럭을 출시한 것인데, 이는 일본에서 보통 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중대형 면허 없이도 파트타임들이 트럭을 운전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일본다운 대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터널이 작으면 저상 기차를, 면허 제한이 있으면 트럭 크기를 줄이는 식입니다. 이를 '화이트 물류'라고 부르며, 물류 종사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입니다. 2024년 2월부터 물류 관련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사가와 택배는 기본 요금을 15% 인상하고, 제로 차량수송은 20%, 냉동식품 업체들은 16%까지 인상했습니다. 이미 물류비 인상분이 제품 가격에 전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각 업체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가와는 별도 전담인력 채용, 일본우편은 배달시간 연장, 편의점들은 배송 횟수 조정과 타사 활용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인상 압력이 될 것입니다.
만약 물류 가격 상승이 예상보다 강력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일본은행이 브레이크를 해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 브레이크를 언제 풀지가 관건이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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