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요일

엔달러 환율 160 돌파: 일본은행의 대응과 전망


 엔화의 가치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의 움직임이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캐리 트레이드는 돈을 빌려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피셔의 자금이동설을 근거로 합니다. 피셔의 자금이동설은 자금 유입 규모를 투자국 수익률에서 차입금 금리와 환율 변동을 뺀 값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투자를 하려는 나라의 수익률이 환율을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자금이 그 투자대상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일본에는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투자 주체가 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정주부들이 가계의 저축과 투자를 전담합니다. 이들은 마이너스 금리인 일본에 예금하지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로 재테크를 하는 성향이 높습니다.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통칭하지만, 이는 저금리가 시작된 1990년 이후 유행하고 있는 일본 가정의 투자 패턴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와타나베 부인이 일본에서 연 이자율 1%로 1,000만 엔을 대출해 미국에 연 이자율 5%인 1년 만기 저축예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투자 당시 양국 간 환율이 달러/일본엔 130이라고 가정하면, 1,000만 엔을 환전한 7만 6천 불로 미국에서 1년 정기예금을 하거나 단기국채를 사면 대략 8만 불이 나옵니다. 환율이 투자시점과 같다면, 8만 불을 엔으로 환전해 1,050만 엔을 받지만, 달러/일본엔이 130에서 150으로 바뀌면 8만 불로 1200만 엔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와타나베 부인은 1200만 엔을 받아서 1010만 엔을 갚고 나도 190만 엔이 남게 됩니다. 환전비용 등 소소한 차이가 있지만, 대략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이들은 이자율이 낮은 일본에서 빌린 엔화를 수익률이 높은 국가에 예금이나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노리고, 환율 이익까지 보게 됩니다.



이렇게 금리에 따라서 자금을 움직이며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은 와타나베 부인뿐만이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저금리로 돌아서자, 미국의 스미스 부인(Mrs. Smith)이 등장했고, 유럽이 초저금리가 되면서 소피아 부인(Mrs. Sophia)이 나오는 식으로 자국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해외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동향입니다. 오랫동안 모아놓은 예금 규모가 크고, 일본이 워낙 오랜 기간 저금리라 와타나베 부인이 상대적으로 유명할 뿐입니다.



작년 봄,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취임하면서 와타나베 부인은 해외로 자금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총재 우에다가 강력한 정책을 펼치는 강경파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였고, 일본의 금리 인상이 당장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흔하면 싸지고, 귀하면 비싸지기 마련입니다. 이들이 엔화를 달러로 바꿔서 해외 투자에 나서니, 엔화는 흔해지고 달러는 귀해져서 엔달러 환율이 150을 넘게 되었습니다. 엔화가 너무 싸지면 일본은행이 개입해 엔화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려고 움직입니다. 중장기적으로 엔화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입니다.



일본은행이 시장에 직접 개입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하며 막대한 전쟁비용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달러를 찍어내야 했습니다. 달러가 흔해지면 가치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헤지펀드들은 달러 가치가 낮아지기 전에 달러를 팔아버렸고, 그 자금으로 엔화 강세에 베팅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5월 8일, 달러당 117엔 수준이었던 엔화는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105엔까지 변동했습니다. 일본은행은 재무상의 지휘하에 반격에 나섰고, 하루 최대 1조 4400억 엔까지 투입해 엔을 방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총 26조 엔의 자금을 투입했고, 보유하고 있는 30조 엔 외에도 200조 엔 규모의 미국 국채 중 만기가 짧은 100조 엔을 팔아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일본은행의 대규모 개입에 헤지펀드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이는 '일은포(일본은행 대포)'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은행의 130조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시장 개입은 헤지펀드들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이후 일본은행의 개입 징후가 보이면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4월 29일, 엔화가 달러당 160을 넘자 일본은행이 다시 환율에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개입 규모는 5조 5천억 엔으로 과거에 비하면 과감한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미국 재무 장관 옐런이 엔화 환율에 대한 일본의 시장 개입은 극히 조심해서 해야 하며, 심한 변동성이 나타날 때만 개입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제대로 개입하려면 미국 국채를 팔아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 국채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을 의미합니다. 이는 옐런이 바이백을 통해 국채금리를 낮추려는 노력과 반대 방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지펀드들은 일본은행의 한계를 확인하고 시장에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일본은행은 5조 5천억 엔 정도를 외환시장에 투입하는 가벼운 개입에 그쳤습니다. 일본은행이 엔화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방법과 금리를 올리는 중장기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 대선 전에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타이밍이 생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시장은 이를 예상하고 조금씩 반응하고 있으며, 일본 국채 10년 물 금리가 1%를 훌쩍 넘고 있습니다.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환율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7월쯤 엔화 강세가 될 것이라는 기존 예상을 유지하겠습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증시를 부양해야 하는 옐런이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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