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8일 목요일

고령 운전자 증가와 교통사고율: 다른 나라의 대처 방안

 시청 역주행 사고 이후, 고령자 교통사고에 대한 기사가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고령자 운전이 정말 문제인지,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보통, 65세 이상 운전자를 고령 운전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2023년 말 서울 개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이 64.6세로, 서울 개인택시 기사 중 50.3%가 고령 운전자입니다. 전국의 고령 택시기사는 10만7371명으로 전체 택시기사 23만5976명의 45%에 달합니다. 젊은 택시기사들이 소득이 높은 택배나 배달업으로 이동하면서, 택시기사들이 점점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화물차나 버스 등 상용차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2019년에 65세 이상인 화물차 기사는 3만4630명이었는데, 2023년에는 7만7215명으로 65% 증가했습니다. 택시, 버스, 화물차 등에서 고령 운전자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민 전체로 봐도 고령 운전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59만 명이고, 이 중 498만 명(47%)이 운전면허를 소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2040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724만 명까지 늘어나고, 이 중 1316만 명(76%)이 운전면허 소지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고령 인구 중 면허 소지자의 비율도 47%에서 76%로 계속 늘어나는 것입니다.


고령일 경우,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기 때문에 큰 사고가 적게 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1년 연령별 교통사고를 보면, 20세 미만 미성년자의 사고율이 가장 높았고(1만 명당 120명), 65세 이상 고령자가 그 다음으로 높은 사고율(1만 명당 79명)을 보였습니다. 사망사고의 경우, 평균적으로 1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0.9명입니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1만 명당 1.8명이 사망합니다. 30대와 비교하면, 30대는 30,304건의 교통사고에서 350명이 사망하지만, 65세 이상의 경우 31,841건의 교통사고에서 709명이 사망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사고율도 높지만, 사고 발생 시 본인 및 사고 피해자 사망률도 고령자가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2종 면허를 기준으로 65세 이상은 5년, 75세 이상은 3년마다 운전면허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면허 갱신을 하려면, 74세까지는 적성검사만 하면 되고, 75세 이상은 인지능력 검사가 추가됩니다. 인지능력 검사는 컴퓨터를 이용해 기억력과 주의력 등을 측정하는 간단한 검사입니다. 한국은 고령자라고 하더라도, 실제 운전능력을 재평가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고령자에 대해 관리가 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70세 이상 운전자는 주행시험을 거쳐 운전면허 재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운전면허 재심사 시 도로주행검사는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운전능력에 따라 한정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한정면허는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거주 지역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범위 제한과 야간 운전 등의 운전 가능 시간을 제한합니다. 75세부터는 4년, 81세부터는 2년, 87세 이상은 매년 재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교통사고나 운전법규 위반 벌점이 있는 75세 이상은 실제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기능검사를 추가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고령자에 대해서는 비상제동장치 등 추가 안전장치가 탑재된 차량만 운전이 가능한 한정면허를 발급합니다. 호주에서는 75세 이상자는 매년 의료평가 및 운전실기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운전실기평가를 받기 싫으면 거주 지역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한정면허를 대신 받을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도 고령자의 면허 갱신 시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를 필수로 요구합니다.


운전면허제도의 보편적인 원칙은 운전능력에 따른 차등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1종, 2종, 오토와 보통, 대형과 소형 등 운전능력에 따라 차등 면허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고령자에게 꼼꼼하게 운전능력을 검사하고, 필요하면 운전범위가 제한된 차등면허를 운용하는 것은 고령자 차별이 아닐 것입니다. 운전은 본인만 위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동승자와 통행자를 모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행위입니다.



65세 이상 고령자 취업자는 2021년 262만 명에서 2026년 323만 명으로 늘어나고, 이 추세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고령자의 운전을 피할 수 없다면, 운전능력에 따른 차등을 강화하는 것은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율이 높고, 교통사고 시 심각한 사망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의 건강 상태를 보면 75세를 넘어가면서 한 단계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65세 이상을 전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65-74세와 75세 이상을 나누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다른 나라처럼 75세 이상 초고령 운전자에 대해서는 좀 더 꼼꼼한 운전능력 확인과 추가 안전장치 부착 차량에 대한 운전 허용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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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7일 수요일

일본 부동산과 다사 사회: 새로운 투자 기회

 일본 부동산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본 부동산은 오랫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격이 오르지 않다 보니, 부동산 구입 목적도 시세차익보다는 합법적인 절세가 대부분입니다. 일본은 건물에 대한 감가상각 경비 처리가 가능한 나라로, 오래된 주택을 싸게 사서 오래 보유하면 건물에 대해 감가상각 비용 처리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목조주택을 1천만 엔에 구입했다면, 건물 가치를 300만 엔으로 잡아 5년 동안 감가상각 경비 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매년 60만 엔씩 5년간 세액 공제를 받게 되면, 노후 단독주택 구입이 절세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고소득자들은 노후 주택을 여러 채 구매해서 5년 동안 절세 효과를 얻은 후 팔고, 다른 노후 주택을 구입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일본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없어 이러한 절세 방법이 가능합니다.



5년을 보유하는 이유는 감가상각을 최대한 누리는 효과가 크지만, 양도소득세도 영향을 미칩니다. 5년 미만 보유 시 양도소득세가 40%인데, 5년 이상 보유하면 양도세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5년 단위로 주택을 보유하는 루틴이 돌아갑니다. 고소득층은 소득세 절세 목적으로 노후 목조주택을 선호하지만, 노년층은 타워맨션을 선호합니다.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해가 심한 나라로, 건물 높이 45m 이상부터는 내진 설계 수준을 넘어서 바닥에 고무판을 깔아 지진 충격을 흡수하는 면진 설계를 합니다. 고층 공동주택을 타워맨션이라고 부르며, 일반 아파트와 차이를 두는 이유입니다. 타워맨션은 지하에 지진을 견디는 안전시설이 강화되어 건축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건물입니다.



타워맨션은 건축 비용은 많이 들어가지만, 고층이라 대지 지분이 작고, 건물 가격이 시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입니다. 일본의 연령별 재산과 부채를 비교해 보면, 40대부터 부채와 자산이 비슷하다가 50대부터 자산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60대를 넘어가면 자산 위주로 재산이 구성됩니다. 일본은 노인들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로 인해 상속세를 절감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본도 한국보다는 낮지만, 상속세율이 높은 나라입니다. 일본의 세법은 토지는 자산 가치가 유지되지만, 건물은 감가상각으로 평가가 계속 낮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워맨션은 토지 지분이 작고, 건물 가격이 시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상속세 평가액이 낮게 잡히게 됩니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타워맨션의 경우 세법상 가격이 평균 시가의 30% 정도로 나옵니다. 1억 엔짜리 타워맨션을 구입해서 상속을 하면, 구입 가격은 1억 엔이지만 3천만 엔으로 평가되어 상속세를 내면 됩니다.



이러한 절세 목적 때문에 일본의 부동산은 가격 상승보다는 절세 수단으로 가치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엔화 가치가 낮아지고, 부동산 가치가 장기간 하락하자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저금리도 부동산 매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담보대출의 평균 금리가 고정금리는 1% 초반, 변동금리는 0% 대입니다. 해외 자금이 부동산 쇼핑에 나서자 도쿄의 신축 타워맨션 가격이 1년에 60%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도쿄 도심의 70m² 신축 타워맨션이 11억 원 정도로 한국의 서울과 큰 차이가 없기도 합니다.



모든 일본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도 오피스는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9년 도쿄의 사무실 공실률은 1.6%였지만, 2023년 공실률은 6.2%로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일본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비싼 도쿄에서 저렴한 인근 시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일본 전체가 아니라 도쿄, 오사카 등에 국한되고, 도쿄, 오사카도 공실률이 높은 오피스빌딩은 가격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주택도 도쿄, 오사카를 제외하면 노령화와 대도시로 사람이 몰리며 장기간 방치된 빈집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도 도쿄와 오사카에 집중되고 있고,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0% 가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것이 투자 규모 증가의 이유입니다. 일본 거주 외국인 증가는 외국인에게 발행하는 비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일본은 부동산에 4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사업체의 직원이 2명 이상이면 비자를 내주고 있습니다. 배우자 등 가족을 직원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투자 비자를 받는 사람이 연간 1만 6천 명 정도 됩니다.


투자 금액이 미국의 80만 달러, 싱가포르 185만 달러에 비해 4만 달러로 크게 낮아 이민을 하는 중국인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이민자의 국가별 정착 현황을 보면 일본이 4위이며, 한국은 3위입니다. 정식 이민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장기 체류하는 중국인만 80만 명에 이릅니다. 엔저로 인해 가격이 싸 보이고, 치안 등 거주 환경도 괜찮아 일본 부동산 구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부동산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금과 비용을 잘 봐야 합니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 취득세가 고정자산평가액의 4%가 붙습니다. 고정자산평가액은 부동산을 땅값과 건물값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건물이 노후화되면서 가격이 점점 낮아지는 것을 반영해 최종 평가액을 결정하니, 오래된 건물의 평가액은 낮게 잡힙니다. 보통 시세의 60~70%가 고정자산평가액이 되고, 여기에 4%가 취득세 세율로 적용됩니다. 한국의 재산세와 비슷한 보유세도 매년 고정자산평가액의 1.4%를 납부합니다. 한국과 달리 등기부등본에 소유자로 올리기 위한 등록 면허세도 추가로 있어, 고정자산평가액의 2%를 매수 시점에 내야 합니다. 이외에도 몇십만 원 정도의 인지세가 추가되고, 법무사 수수료 등이 들어갑니다. 매도 시 시세차익이 있으면 한국처럼 양도소득세가 부과됩니다. 5년 이내 보유는 양도소득세가 40%까지 나와서, 시세차익을 누리려면 5년 이상 보유해야 합니다.


중개 수수료도 유의해야 합니다. 한국의 중개 수수료는 1%가 되지 않고, 매매 금액이 커지면 할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중개 수수료는 (3%+6만 엔)에 소비세 10%가 추가됩니다. 한국 중개 수수료의 6~7배 정도가 나오며, 금액이 커도 할인이 거의 없습니다. 20억 원에 집을 매매할 경우, 중개사는 매도인과 매수인에게 각각 6,655만 원을 중개 수수료로 받습니다. 똘똘한 1건만 중개해도 양측에서 수수료를 받으면 1년을 먹고살 수 있어서, 편의점보다 부동산 중개소가 많은 이유입니다.



최근 중국인들의 일본 부동산 구입 트렌드는 개인 소유의 절이나 신사입니다. 일본에서는 개인이 절이나 신사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처럼 조계종 등 종단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개인 소유 부동산에 절이나 신사를 만들어 소속 없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이나 신사의 소유자 겸 주지 스님은 노령으로 종교 활동이 힘들어졌고, 절을 이어받아 운영할 후계자가 없어서 매물로 나옵니다.


종교법인을 소유하면 몇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종교 수익은 비과세이고, 종교시설에는 고정 자산세가 부과되지 않으며, 주차장 등 종교 활동 이외의 수익도 세율 우대를 받습니다. 10년 이상 보유한 후 매각하면, 양도소득세가 비과세인 점도 장점입니다. 일본의 개인 소유 신사나 절은 종교인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매입이 가능합니다. 일본의 절이나 신사는 경내에 묘지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이나 신사의 가치는 건물보다 추가로 묘지를 쓸 수 있는 빈자리가 많은지에 따라 좌우됩니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의 다음 단계인 다사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다사는 사망자가 많아지는 사회로, 장례나 법요(고인의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 수요가 많아지고 사업이 커지고 있습니다. 종교가 없더라도 절이나 신사 운영이 가능한 것도 장점입니다. 절이나 신사를 구입하면 스님은 파견 업체를 통해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견 스님의 급여가 월 20만 엔 정도로 높지 않습니다. 법요 시주로 건당 3~5만 엔을 받으며, 한 달에 6~7건만 법요가 생기면 파견 스님의 고정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스님의 소득이 부족하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 재팬에서 장례 업체와 제휴해 '스님 배달' 사업을 하고 있어, 건수가 생기면 법요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절이나 신사를 구입해서 종교법인 대표가 되면 일본으로 귀화 신청이 쉽게 나는 것도 장점입니다. 한국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다음 단계인 다사 사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금이나 비용이 부담스러운 일본 부동산 자체보다는 다사 사회로 나아갈 때 뜨는 사업을 미리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될 듯합니다. 일본 부동산 투자는 각종 세금과 중개 수수료 등이 많아서, 비용을 잘 보고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은 노령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노령화뿐만 아니라 다사 사회에 뜨는 사업까지 공부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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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5일 월요일

판다에서 인광석까지: 자원 외교의 양면성

 1869년, 중국 쓰촨성에서 프랑스 선교사 다비드가 사냥꾼에게 판다 가죽을 선물받으며 판다가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판다의 색다른 생김새가 주목을 끌자 영국과 미국의 많은 사냥꾼들이 판다를 사냥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판다가 사냥되었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두 아들도 판다를 사냥하고 기념사진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판다의 모피는 일본과 홍콩 등 암시장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고, 밀렵꾼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40년 전 거래가는 4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에 중국은 판다 보호구역을 만들고, 판다 밀렵꾼들에게 종신형까지 선고하며 강하게 대응하자 밀렵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중국은 판다를 외교에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72년,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간의 미중 수교가 이루어졌을 때, 마오쩌둥은 판다 두 마리를 미국에 선물했습니다. 워싱턴 동물원에서 판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중국은 9개국에 판다 24마리를 선물하면서 판다 외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984년, 덩샤오핑은 판다를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판다를 무상으로 선물하는 대신, 월 5만 달러를 받고 임대하는 방식을 지시했습니다.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해외에 선물한 판다가 번식해서 흔해지는 것을 막는 목적이었습니다. 1992년 8월, 한국도 중국과 수교를 맺었고, 중국은 한중 수교 2주년을 기념해서 판다 한 쌍을 한국에 보냈습니다. 2016년에도 중국은 한중 친선을 도모한다며 판다 암수 한 쌍을 추가로 보냈고, 2020년 7월 한국에서 푸바오가 태어났습니다.



푸바오는 만 4세가 되는 2024년 7월까지 중국으로 반환해야 해서, 2024년 4월 중국으로 보내질 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푸바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자손은 보낼 수 있지만 귀환한 판다는 다시 그 나라로 보내지 않는다"라는 원칙 때문에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푸바오의 자손이 한국에 다시 보내질 가능성이 남아 있는 정도입니다.


전 세계에 판다는 약 2,500마리 정도 있으며, 야생 판다는 1,800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중국은 판다를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판다가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는 판다 보호구역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0년, 쓰촨성 일대에 묻힌 인광석 개발을 위해 판다 보호구역이 축소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인광석이라는 자원이 판다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원소 번호 15번인 인(Phosphorus)은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으로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해 인 비료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인은 강과 호수, 바다로 유입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매년 전 세계 농경지에 뿌린 인 비료의 34%가 빗물 등에 씻겨 강과 호수, 바다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인 성분이 하천과 호수 등에 들어가면 간 독성을 가진 독소를 생성하는 남세균 등의 녹조를 성장시키고, 바다에 들어간 인은 수온이 올라가면 적조 등 식물플랑크톤의 대발생을 일으킵니다. 식물플랑크톤이 죽어서 분해되며 산소를 소모하면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를 먹고 살아가는 물고기 등이 살 수 없는 데드존이 생기게 됩니다. 여름철 수온이 올라가면 강에 녹조가 생기고, 바다에서 양식하는 어류의 폐사 관련 기사가 한 번씩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인 배출이 많은 국가입니다.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인이 많은 지역인데, 한국도 검붉은 빛의 국가에 속합니다. 농업 생산에 사용된 비료 성분 중 작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유출되는 비료 성분을 양분 수지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양분수지는 헥타르당 질소가 212kg으로 세계 1위이고, 인은 46kg으로 세계 2위 수준입니다. 좁은 땅에 비료를 많이 사용해서 최대한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인은 비료로 사용되는 정도지만, 모로코에서는 인이 경제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19세기 아프리카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확보 전쟁터였습니다. 1884년, 포르투갈의 중재로 유럽 열강들이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나눠먹기 회담을 시작했습니다. 열강들 간 협상을 거쳐 최종 합의안이 나왔는데,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분포를 무시하고 직선으로 국경을 그어버린 것입니다. 스페인은 베를린 회담에서 서사하라 지역을 분배받았고, 군대를 보내서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서사하라 지역에는 원주민인 사흐라위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사흐라위 부족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흐라위 부족 주도로 서사하라 독립 무장단체인 폴리사리오 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모로코가 해당 지역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서사하라의 천연자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에 산소 분자가 결합한 것이 인산염으로, 인산 비료의 원료가 됩니다. 인산염이 없으면 세계의 곡물 생산량이 반 토막이 날 것으로 보고 있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질소비료는 전기만 있으면 공기 중의 질소로 만들 수 있지만, 인산염은 천연 인광석으로 만드는 한정적인 자원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전 세계 인광석 매장량은 약 720억 톤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500억 톤 이상이 모로코와 서사하라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로코의 상위 10대 수출 품목 중 1위가 비료, 5위가 인산, 8위가 인산염일 정도로 모로코는 인광석으로 돌아가는 나라입니다. 인광석 가격이 올라가면서 모로코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인광석 매장지 대부분이 서사하라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인광석은 동물의 똥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광물질로, 이것을 조금 섞으면 농사가 두 배 이상 잘 되는 마법의 돌가루입니다. 잉카제국이 척박한 돌산에서도 농사를 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비밀도 인광석을 농사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광석은 똥이 수천 년간 쌓여서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채굴도 땅을 파내려 가면 되는 쉬운 작업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인광석의 문제는 부존량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세계 인광석 매장량 720억 톤 중 중국에는 19억 톤이 있습니다. 중국의 인광석 매장량은 19억 톤 정도인데, 전 세계 인광석의 54%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2022년 중국의 인광석 생산량은 1억 2천만 톤이었으며, 이 중 71%는 비료 생산에 쓰였지만, 배터리에 인광석 사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문제입니다. 중국이 주력으로 생산하는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의 인산이 그 예입니다. 1GWh의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생산하려면 2,500톤 정도의 리튬인산철 양극재가 필요하고, 1톤의 리튬인산철 양극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4.3톤의 인광석이 필요합니다.


중국산 인광석은 19% 정도밖에 함량이 나오지 않는 저품위 인광석이라 모로코보다 훨씬 많은 인광석을 채굴해야 비슷한 양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 인광석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공급하고 있지만, 19억 톤 중 1억 톤 이상을 매년 캐내고 있어 한계에 곧 도달할 상황입니다. 인광석 고갈 위험을 느낀 중국은 2017년부터 자국 내 광산의 인광석 채굴량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중국은 500억 톤의 인광석이 매장되어 있는 모로코에서 생산을 늘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모로코에서 인광석을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LFP 배터리 공장을 모로코에 건설하고 있습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인산염이 2026년부터 품귀 현상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LFP 배터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인산염 고갈 속도가 빨라져, 완성차·배터리 업계의 타격이 우려됩니다. 포춘지는 LFP 배터리 시장이 2021년 100억 달러에서 2028년 5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은 2천만 톤 내외의 인산염을 LFP 배터리에 쓰고 있는데, 2028년에는 LFP 배터리에 1억 톤의 인광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광석 매장량이 19억 톤인데 매년 2억 톤이 필요하다면 자원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인산염을 정제하면 10% 정도의 PPA(정제 인산)가 나옵니다. PPA의 90%는 비료와 사료, 세제, 제약 등으로 활용되고, 배터리에는 10%가 쓰이지만, LFP 배터리 사용이 늘어나면서 빠르게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2026년부터 PPA 공급난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인산으로 만드는 인산암모늄의 수출을 통제하는 것은 2026년부터 일어날 공급 부족 사태를 대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인산암모늄은 암모니아가 인산과 반응할 때 생성되고, 인산은 인광석과 황산을 결합해서 만드니 결국 인광석 부족이 문제입니다.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3원계 배터리 위주로 발전해 왔습니다. 3원계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 니켈 등의 가격이 비싸다 보니, 3원계 배터리 위주로 재활용 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LFP 배터리는 인산과 철이 싼 광물이라 재활용을 했을 때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본 것입니다. LFP 배터리의 kWh당 금속 가치는 45달러로 NCM(811) 68달러, NCA(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71달러와 차이가 많이 납니다.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광물의 가격이 재활용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적으면 사업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LFP 배터리는 추출한 광물의 가격이 비용보다 적다 보니, 중국은 LFP 배터리를 재활용하지 않고 매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 세계 전기차 폐차 대수는 2030년 411만 대에서 2040년 4,227만 대로 빠르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성능이 80% 밑으로 떨어지면 전기차에 사용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전기차용으로 쓸 수 없게 된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로 재사용되고, ESS로도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면 재활용 대상이 됩니다. 재활용은 해체, 분쇄, 열처리를 거쳐 분말을 만드는 전처리 공정과 분말을 제련해서 원료별로 추출하는 후처리 공정으로 나뉩니다.


재활용 성공의 관건은 회수율입니다. 공정을 한 번 돌렸을 때 50%를 회수한다면, 나머지 50%로 공정을 다시 돌리면 25%가 추가로 회수되는 식입니다. 공정을 돌릴 때마다 비용이 추가되니, 공정을 여러 번 돌리지 않고 한 번의 공정으로 90% 이상을 회수한다면 경제성이 있습니다. LFP 배터리에서 잔존 가치 비중이 가장 큰 광물은 리튬입니다. 리튬 가격이 kg당 150위안(27,700원)을 넘기면 LFP 배터리 재활용의 수익성이 나오는 단계가 됩니다. 지금은 리튬 가격이 많이 낮아졌지만, 작년 6월 kg당 300위안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회수율을 조금 더 높이면 재활용의 경제성이 나올 것입니다.



인광석도 매장량이 줄어들며 잔존 가치가 오르고 있어, 리튬뿐만 아니라 인도 LFP 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LFP 배터리는 재활용 가치가 없다는 기존 인식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회수율이 올라가고, 인까지 재활용 가치가 있는 자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92%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인산염도 미리미리 공급선을 다변화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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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2일 금요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푸틴의 종전 제안 배경

 푸틴에게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푸틴은 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종전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2018년 6월, 푸틴은 연금법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남자는 60세, 여자는 55세부터 받을 수 있었던 국민연금을 남자는 65세, 여자는 63세로 크게 늦춘 것입니다. 연금 수령 시기가 남자는 5년, 여자는 8년 늦어졌지만, 러시아 남자들이 더 화를 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 남자의 평균 수명이 62세인데, 65세부터 연금을 준다는 것은 사실상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인의 90%가 개정안에 반대했고, 모스크바 등 여러 도시에서 "푸틴은 도둑놈"이라는 연금법 개정 반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80%가 넘던 푸틴의 콘크리트 지지율도 50%까지 급락하게 되었습니다. 푸틴의 지지율 하락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인 독재로 장기 집권을 하는 푸틴의 힘은 80%가 넘는 러시아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율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4년 3월에 예정된 다섯 번째 대통령 선거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푸틴이 5선에 성공하더라도 압도적인 지지율이 아니라 50%를 살짝 넘는 지지율이 나온다면, 그의 말년이 불안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연금 개혁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리며 결집했습니다. 그 결과, 푸틴은 80%대 지지율을 다시 회복했고, 2024년 3월 대선에서 87%의 득표율로 5선에 성공했습니다. 푸틴은 목표 중 하나인 압도적인 5선을 달성한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입장에서는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들이 우크라이나 땅이든 러시아 땅이든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 지역들이 유럽과 영토가 붙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영토가 붙어 있다면, 러시아의 기습 침공 위험이 커지지만, 러시아 점령 지역은 러시아에 붙어 있었습니다. 현재 점령 상태를 유지하고 종전을 해도 유럽 연합(EU)은 큰 불만이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도 얻을 수 있는 실리를 모두 얻었습니다. 존재감이 사라져 가던 나토가 살아나면서 EU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의 역사도 우크라이나에 완전히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의 본진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 있었습니다. 1240년 몽골군이 러시아에 침입해 키예프는 쑥대밭이 되었고, 러시아는 본진을 동북부로 이전했습니다. 그 동북부가 바로 모스크바입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수도가 있었던 우크라이나를 같은 어머니를 가진 작은 동생 정도로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두 나라의 기원이 모두 키예프이고, 일부가 모스크바로 이동했기 때문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 몸이라는 시각이 강한 것입니다.



푸틴이 소련을 만든 레닌을 탓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하나로 통합해도 문제가 없었는데, 자치 정부로 만들어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1928년, 소련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낙후된 농촌 지역을 변화시키겠다며 우크라이나 농촌을 집단농장으로 바꾸었습니다. 농민들은 집단농장을 새로운 농노제라고 부르며 저항했습니다. 스탈린은 농민들의 저항을 힘으로 눌렀고, 2년 내 90% 이상의 농가를 집단농장으로 전환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가축과 식량을 집단농장에 내놓고, 공동 경작을 해서 배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농지와 가축, 식량의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집단농장에서 나오는 산출물은 국가가 균등하게 나누는 공산주의 정책이었습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 노동자들까지 먹여 살려야 했고, 열심히 일해도 개인에게 추가로 떨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스탈린은 봉건적인 농촌을 집단농장을 통해 과학적이고 사회주의 방식으로 진보시키면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집단농장으로 바뀌자 곡물 생산은 20% 이상 감소했고, 가축 수도 반으로 줄었습니다. 농민들이 자신 소유가 아닌 공유로 돌아가는 집단농장에서 대충 일했기 때문입니다. 곡물 생산은 감소했지만, 도시 주민과 군대를 먹여 살리고 수출까지 욕심내며 대량 공출을 시행했습니다. 집단농장 전에는 천만 톤 정도 곡물을 시장 가격으로 구입했지만, 1931년에는 2300만 톤을 무상으로 공출했습니다. 1932년, 소련 공산당은 수확량을 9000만 톤으로 예상하고, 2900만 톤을 공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제 수확량은 6700만 톤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공출량은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역은 공출 강도가 더 심해 수확의 43%가 공출로 나가자 농민들은 수확한 곡물을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숨긴 곡물을 찾기 위해 정부 차원의 수색과 심문, 압수가 이어졌지만, 공무원들은 할당량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압수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다음해 농사를 위해 남겨놓은 종자까지 압수하는 상황이 여러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하필 이 타이밍에 2년 연속 역대급 대흉년이 오면서 매일 15000명이 굶어죽었고,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 5000만 명 인구의 12%가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농업 지역 주민들이 지금도 러시아에 치를 떠는 배경입니다.


우크라이나 도시 지역은 집단농장에서 나오는 곡물이 배급되며 대규모로 굶어 죽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이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다른 이유입니다.


2차 대전의 승전국들은 독일을 동독과 서독으로 반으로 나누었고, 소련은 동독을 실질적으로 지배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며 동독과 서독이 통일될 때, 서독과 미국은 동독을 지배하던 소련에게 비밀 약속을 했습니다. 통일된 독일의 국경 동쪽으로는 더 이상 서방 국가들이 영역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소련은 동독에서 철수했고, 독일은 통일되었습니다.



이 비밀 약속을 하는 시기에 동독에 파견 나가 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소련 KGB 요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푸틴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은 소련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했고, 2004년에는 불가리아와 리투아니아까지 나토로 넘어갔습니다. 푸틴이 더 이상 미국과 EU의 약속에 속지 않겠다고 분노하는 지점입니다.


수백 년 동안 크림반도는 여름철 기후가 쾌적해서 러시아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과 공산당 간부들이 즐겨 찾는 소련의 휴양지였습니다. 1954년, 소련의 흐루쇼프는 크림반도를 소련 연방 소속인 우크라이나에게 뜬금없이 넘겼습니다. 당시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죽은 뒤 벌어지고 있는 권력 투쟁에서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줬다고 해도, 어차피 소련 안에서 이동한 것이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별개의 국가로 갈라지자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크림반도에는 세바스토폴이라는 미국과 나토의 해상 무력을 견제하는 군항이 있었습니다. 세바스토폴은 가장 추운 2월에도 평균 온도가 영상 3도 정도라 1년 내내 바다가 얼지 않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아 러시아 흑해 함대가 기항으로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크라이나 땅이 돼버린 것입니다.


소련이 붕괴하며, 우크라이나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2042년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임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러시아 해군이 임대로 계속 사용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이 우크라이나 소유라는 점이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친유럽파와 친러시아파가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었습니다. 2013년,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친러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 가입을 포기하고, 러시아와 우호 협력 조약을 맺은 것이 원인이었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시위를 통해 친 러시아 정권을 몰아내고 친서방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은 러시아의 신경을 계속 건드렸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세바스토폴에 주둔 중이던 흑해 함대의 임대료를 4배까지 인상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어와 공용어로 사용하던 러시아어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동부 지방, 특히 크림반도에는 우크라이나인보다 훨씬 많은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한다는 발표는 우크라이나를 폭넓은 러시아의 일부로 생각하던 푸틴에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2014년 동계 올림픽이 러시아 소치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아주 험악했습니다. 2013년 6월 23일, 미국 국가 안보국(NSA) 소속 분석관 스노든이 NSA와 CIA에서 빼낸 정보를 가지고 홍콩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를 탄 날이었습니다. 2013년 9월로 예정된 오바마와 푸틴의 정상회담은 취소되었고,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소치 동계 올림픽에 미국은 제대로 된 인물을 참석시키지 않는 험악한 분위기였습니다. 러시아는 동계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크림반도에 전투부대를 진입시켰고, 크림반도 주민들에게 러시아 합병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크림반도 주민들은 친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라 96%가 러시아와의 합병에 찬성 표를 던졌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대기근을 겪었던 농업 지역과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산업이 성장한 지역이 합쳐진 나라입니다. 농업 지역은 반 러시아, 친 유럽 성향을 띠고, 산업 지역은 친 러시아 구도를 띠고 있습니다. 두 세력 간 인구 수가 비슷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를 하면 친러 정권이 집권하기도 하고, 반러 정권이 집권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는 주민들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쓰는 전통적인 친러 지역입니다. 2014년, 크림반도를 크림 자치 공화국으로 독립한 후 러시아에 편입한 것이 우크라이나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친러 성향으로 집단 투표를 해주던 크림반도 주민들이 러시아로 가버리니, 친 러시아 표가 줄고 반 러시아 표가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입니다. 1인 1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투표 제도에서 팽팽하던 친러와 반러 진형이 반러 쪽으로 힘이 몰리게 되었습니다.


반러 세력이 인구 수로 우세해진 우크라이나는 2019년 2월에 나토 가입을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푸틴은 이렇게 된 바에는 크림반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친러 지역을 모두 러시아 땅으로 만들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언어 사용 분포를 보면, 가장 남쪽의 크림반도는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친러 지역입니다. 푸틴은 1차로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가져갔고, 다음 단계로 우측의 푸른색이 많은 친러 지역을 공략했습니다.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그 지역은 러시아어가 기본 언어인 지역과 거의 일치합니다.



현재 점령 지역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끝낸다면 푸틴의 두 번째 목표가 달성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목표인 대선도 87% 득표율의 압도적인 결과로 끝났습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을 보류하고, 현 점령지를 유지하는 선에서 종전을 하자"라는 메시지를 서방에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푸틴은 목표를 달성한 상태라 현재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고, 미국과 EU도 은근히 동조하는 분위기입니다. 핵심 도시 지역을 넘겨줘야 하는 우크라이나만 애가 타는 상황입니다. 천하의 푸틴도 연금 개혁 때문에 고생할 만큼 연금 개혁은 표가 안 되는 일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도 쉽지 않은 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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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1일 목요일

보이저호와 2차 전지: 혁신과 안전의 경계

 1977년 8월 20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 공군기지에서 보이저 2호가 발사되었습니다. 보이저 2호가 발사된 지 15일 뒤인 1977년 9월 5일에는 보이저 1호도 발사되었습니다. 비록 보이저 2호가 먼저 발사되었지만, 경유지가 많아 직통에 가깝게 날아가는 보이저 1호보다 태양계를 벗어나는 시간은 늦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발사는 늦었지만, 태양계를 먼저 벗어나는 보이저에게 1호라는 앞 순번을 붙였습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나는 행성 정렬은 주기적으로 발생합니다. 2024년 8월 28일에도 수성, 화성, 목성, 천왕성, 해왕성, 토성이 하늘에 일렬로 정렬될 예정입니다. 만약 8월 28일 밤하늘이 맑다면, 가까이 모여있는 행성들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저 1호는 이러한 행성들의 중력을 이용해 속도를 높이며 날아갔습니다. 태양계 5개 행성이 일직선에 놓이면서 중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행성 정렬은 175년마다 한 번씩 일어납니다. 보이저 1호는 이 현상을 활용해 30년 걸릴 비행 기간을 8년 만에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와 통신에 편도 20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를 날고 있습니다.



보이저 1호와 2호의 주요 문제는 전기였습니다. 천왕성까지만 가도 햇빛이 지구의 40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해 태양전지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보이저는 이를 3차 전지를 사용하여 해결했습니다. 3차 전지는 연료를 주입받아 스스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입니다. 우주 공간에서는 중력과 마찰력이 거의 없어서 큰 힘이 필요 없지만, 우주선의 장비를 구동하려면 전력이 필요합니다. 보이저 1, 2호는 플루토늄 238에서 나오는 방사선에서 전력을 얻는 원자력 3차 전지를 사용했습니다. 플루토늄 238은 반감기가 87년으로 오랜 기간 사용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NASA는 기능을 하나씩 줄이며 전기를 아끼고 있습니다.



보이저 1호는 2013년 9월 13일 태양계를 벗어났습니다. 3차 전지가 아직 작동 중이어서 보이저와 통신이 가능했으나, 2023년 11월 보이저 1호에 고장이 발생했습니다. 탐사선에 탑재된 메모리 반도체 중 하나가 고장난 것입니다. NASA의 엔지니어들은 고장 난 메모리를 우회하여 명령이 전달되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했고, 고장 수리에 성공했습니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호들은 현재도 3차 전지가 작동하면서 지구와 교신 중입니다. 원자력 3차 전지는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하지만, 실생활에 사용하기에는 위험합니다. 소련에서는 무인등대를 돌리기 위해 원자력 전지를 사용했지만,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폐기된 원자력 전지들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원자력 3차 전지를 사람이 없는 우주 공간으로 보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2차 전지는 방사선이 나오지는 않지만, 화재의 위험이 큽니다. 한국과 중국이 주력으로 쓰고 있는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 모두 리튬과 산소가 기본 구성 요소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화재 진압 방법은 산소 공급을 차단해 불을 끄는 것이지만, 2차 전지는 자체적으로 산소를 포함하고 있어 화재 진압이 어렵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여러 겹으로 포장되어 있어 물을 뿌려도 발화 지점까지 도달하기 힘듭니다. 전기차에 불이 나면 불을 끄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전기차를 물속에 완전히 담그는 방법 정도가 대책이 됩니다.



2022년 2월 16일,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차 4천여 대와 전기차 300대를 실은 자동차 운반선이 대서양에서 불이 났습니다. 차량 가격만 4억 달러가 넘는 고급차가 많이 실려 있어 화재 진압에 최대한 노력했지만, 불을 끄지 못하고 침몰했습니다. 화재 원인은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로 조사되었습니다. 2023년 7월에도 차량 3천 대를 실은 자동차 운반선에 화재가 발생해 배가 전소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화재도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유럽 해상안전청(SMSA)은 "대다수의 선박 화재 사고는 리튬이온배터리가 포함된 화물 운반 중에 발생했다"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전기차는 불을 끄기 힘들고, 자동차 운반선은 차량들이 촘촘히 선적되어 있어 연쇄 발화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차 운송 비율이 높은 현대 글로비스는 자동차 운반선에 불이 나면 소화 덮개를 씌우고 화재를 진압하는 모의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소화 덮개는 1500도에 버틸 수 있게 특수 코팅된 내화 섬유로, 불이 난 차량에 덮어 산소 유입을 막아서 불을 끄고 열과 연기를 차단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다른 차들로 화재가 확산되기 전, 전기차 화재 초기 단계에서 대응 가능한 방식입니다.


전기차가 늘어나면 아파트 주차장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비율이 높아지면, 자동차 운반선과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명이 지난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ESS도 화재 위험이 높습니다. 2차 전지의 충방전을 반복하다 보면, 음극 표면에 덴드라이트라는 물질이 쌓이게 됩니다. 덴드라이트가 분리막을 찢으면 음극과 양극이 쇼트를 일으키고, 인화성이 높은 전해액과 반응해 화재 및 폭발이 발생합니다. 교통사고 등의 충격으로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이 찢어져 화재로 이어지는 현상도 덴드라이트에 의해 일어납니다.



전기차로서 수명이 다한 오래된 배터리의 경우 내부에 덴드라이트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래된 배터리를 좁은 공간에 밀집해놓는 ESS 구조상 한두 개의 불량 배터리에서 불이 나면 화재가 쉽게 커집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에 설치된 ESS에서 39건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ESS 화재가 자주 일어나자 전기안전공사는 ESS 화재 원인 조사단을 구성해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습니다. 조사단은 “사고 발생 초기, 셀 전압 미세 변동 후 급격한 배터리 전압 변동과 온도 상승이 발생했다"라고 원인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배터리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조사단의 결정을 수용해 문제 제품을 리콜 처리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ESS는 한 번 화재가 나면 남김없이 전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화재 원인을 밝히기 힘듭니다. ESS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순간 온도가 800℃ 이상 올라가며 여러 셀들이 열을 받아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화재 진화가 어렵습니다.


화재 위험이 높다 보니, 주거지 인근에 ESS 저장소를 설치하는 것이 쉽지 않아 ESS 확대 속도가 늦춰지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ESS 등 2차 전지 사용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화재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차 전지 화재방어 설비와 전기차 전용 소방용품 등 화재 대비 부분에도 시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기차와 ESS가 확대되면서, 화재와 관련한 이슈들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분리막이 없어 화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전고체 배터리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기차 전용 소화기 등 안전장비 시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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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8일 월요일

치매 치료제 시장의 변화: 레카네맙과 도나네맙

치매 치료제 도나네맙이 2024년 7월 2일 FDA를 통과했습니다. 뇌는 두개골 안에서 뇌척수액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기관입니다. 워낙 중요한 부위라 단단한 두개골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권투의 어퍼컷같이 강한 충격이 두개골에 오면, 뇌척수액에 둥둥 떠다니던 뇌가 단단한 두개골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를 뇌진탕이라고 부릅니다. 권투에서 턱을 올려쳐서 KO로 만든다는 것은, 뇌를 두개골에 부딪치게 해서 뇌진탕으로 기절시키는 것입니다. 어퍼컷은 상당히 위험하고, 후유증이 많이 남는 행위로 권투선수들이 은퇴 후 여러 가지 후유증에 시달리는 원인이 됩니다.



뇌척수액이 40도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뇌가 익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고열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40도 이상 고열이 오래 계속되어 뇌가 익으면, 청각, 시각 등에 장애가 오기도 하고, 뇌의 일부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열이 많이 날 때 땀을 빼서 열을 낮추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은 따뜻하게 하더라도 머리는 차가운 물수건 등으로 식히는 게 좋고, 가능하면 해열제를 먹어 열을 내리는 게 나은 이유입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을 하고 사고를 하는 능력이 천천히 약해지며 치매를 향해 나아갑니다.


치매의 70% 정도는 알츠하이머병으로, 1906년에 독일의 알츠하이머라는 의사가 환자를 보고하며 알려졌습니다. 치매는 아밀로이드라는 치매 유발 물질이 뇌에 쌓이면서 심해지고, 10년 정도에 걸쳐서 계속 악화된다는 가설이 대세입니다. 위 가설의 근거가 된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의 2006년 논문이 사진조작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후속 논문들이 계속 나와서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원(CNRS) 연구진은 아밀로이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신경세포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지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아밀로이드 응집체가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기능을 방해하고 소멸시키는 것을 분자 단위에서 확인해서 국제 학술지인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실은 것입니다. 아밀로이드가 계속 쌓이다 보니, 치매 초기 증상 이후 5년 정도 지나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대 제약회사들이 수십 년간 수십조원을 투자했지만 치매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화이자의 경우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신약 개발에 손을 뗄 정도였습니다. 인구가 노령화되며, 치매환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치매약이 개발되지 않자 미국 FDA가 치매약의 기준을 완화해 줬습니다. 치매는 심한 정도에 따라 6단계로 나누며, 뇌에 독성 단백질이 쌓이고 있지만 증상이 없는 1단계부터,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기억력이 약해지고, 일주일 전을 기억 못 하는 3단계까지를 보통 경증 치매로 분류합니다. 단기 기억상실이 심해지고, 돈 관리하기 같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는 4단계부터 공식적으로 치매 진단이 내려집니다. 지금까지 FDA가 치매약으로 인정한 기준은 4~6단계 환자를 1~3단계 환자로 개선하는 약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치매약이 개발되지 않자, 2018년에 FDA가 치매약 기준을 낮춰줬습니다. FDA는 4~6단계가 1~3단계로 좋아지지 않더라도, 1~3단계 경증 치매환자가 4~6단계 중증 치매환자로 가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방지하면 이것도 치매 약으로 인정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2021년 6월 7일. 드디어 치매약 하나가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아두헬름(Aduhelm)입니다. 아두헬름은 건강한 노인에게서 얻은 항체를 치매 환자에게 주입해 뇌에 쌓여있는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 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아두헬름은 FDA 승인이 났지만, 뇌부종 등 부작용이 심하고, 약효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약효도 별로인데 가격까지 너무 비쌌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맥주사로 맞아야 하는데, 한번 맞는데 4,312불(600만원)정도라 1년 약 값이 7천만원이 넘게 됩니다. 치매를 고치는 것도 아니고, 중증 치매로 가는 것을 늦추는 약인데, 1년에 7천만 원을 쓴다는 것은 웬만한 가정에서는 부담이 큽니다. 한국만 해도 치매환자가 83만 명이고, 노령화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라, 건강보험을 적용해주기도 어려운 약입니다. 아두헬름은 비싼데다 약효가 확실하지 않고, 부작용까지 심하자 병원에서 외면을 받았고, 실제 사용이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2023년 1월 8일, FDA는 두 번째 치매 치료제를 "가속 승인" 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속 승인은 중요하고 위험한 질병 치료를 위해 임상 2~3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신속하게 도입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가속 승인은 일단 투약을 먼저 시작하고, 임상 데이터가 충분하게 확보되면 정식으로 승인을 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치매 치료제의 이름은 "레카네맙"입니다. 레카네맙은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약입니다. FDA는 레카네맙에 대해 "알츠하이머의 증상만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알츠하이머의 근본적인 질병 기전을 타깃으로 영향을 미치는 최신 치료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치매 증상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치료 효과도 있다는 말입니다. 레카네맙은 알츠하이머의 원인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아밀로이드를 뇌에서 제거하는 작용을 합니다. 레카네맙 임상 결과가 중요했던 것은 수십 년간 의학계가 논쟁 중인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입증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국립과학 연구원(CNRS)의 논문 등이 있지만, 의학계에서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 속에서 뭉쳐 플라크를 형성하는 게 치매의 원인이라는 것이 맞느냐를 가지고 논쟁 중이었습니다. 아밀로이드가 뭉치는 것을 막는 메커니즘의 레카네맙이 치매 치료 유효성을 입증했다면, 가설이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다른 제약사들의 치매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는 것입니다. 레카네맙은 초기 치매환자 1,795명에게 실시한 임상실험에서 플라시보(가짜약)를 받은 환자보다 인지능력이 27% 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달에 2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아두헬름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적어서 관리할 만한 수준으로 보게 됩니다. 약 값은 연간 2만6500달러(3700만원)으로 책정되었고, 1~3단계 초기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하게 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기준 전 세계 알츠하이머 환자 수는 5,400만명이고, 2050년까지 1억 3천만명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2023년 98만명의 치매환자가 2030년 142만명, 2050년 315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말이 됩니다. 레카네맙은 '레켐비(LEQEMBI)'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출시를 했습니다. 레켐비(레카네맙)는 2023년 6월, 한국 식약처에도 품목허가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한국은 2024년 하반기에 허가가 나는 일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라이 릴리가 레켐비(레카네맙)보다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치매 신약을 발표했습니다. 도나네맙(Donanemab)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국제 컨퍼런스에서 일라이 릴리는 도나네맙 3상 임상결과를 발표했습니다. 3상에서 도나네맙을 76주간 투여한 환자들은 위약(가짜약)을 투여한 환자들보다 인지력, 사고력, 일상생활 수행능력 등의 저하 속도가 35%정도 느려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치매 초기 단계의 평균 연령 73세의 환자 1,736명이 임상에 참여했고, 4주에 한번 도나네맙 주사를 맞았습니다. 레카네맙이 투병 초기 단계에서 인지력 저하 수준을 27% 늦춘데 비해서, 도나네맙은 35%까지 지연 효과가 큽니다. 도나네맙이 레카네맙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투여 시점입니다. 도나네맙은 빨리 투여를 시작할 수록 효과가 더 좋았습니다. 가장 초기 단계 치매환자는 인지 기능 저하가 60%까지 늦춰지고, 알츠하이머병이 다음 단계로 진행될 확률을 39% 낮췄습니다.



임상 대상 환자 중 47%는 도나네맙을 투여하는 1년 동안 더 이상 치매가 악화되지 않아서, 투여하지 않은 사람 대비 2배에 가까운 효과가 나온 것입니다. 일라이 릴리는 FDA에 도나네맙에 대한 승인을 신청했습니다. 레카네맙(레켐비)이 이미 FDA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지만, 효과가 뛰어난 도나네맙(키순라)으로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환자의 뇌 속에 축적되는 독성 단백질 중 하나인 아밀로이드를 줄이는 데 작용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차이점은 레카네맙은 아밀로이드가 뇌에서 섬유질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단계를 표적으로 삼고, 도나네맙은 섬유질이 플라크 형태로 뭉쳐진 단계에서 약효가 발휘된다는 차이입니다. 초기 치매 환자에게는 레카네맙이, 중증 이상 치매환자에게는 도나네맙이 동시에 처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레카네맙은 한번 투여를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계속 투여를 해야 합니다. 도나네맙은 레카네맙과 달리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한 뒤 약물 투여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임상에서도 도나네맙을 투여받은 환자의 17%가 6개월 만에 투여를 중단했고, 47%는 1년 이내, 69%는 18개월 이내 투여를 중단했습니다. 도나네맙 투여를 중단한 뒤에도 1년까지는 인지능력 저하 속도가 계속 느려지는 효과가 확인된 것입니다. 도나네맙은 1년치 3만2000달러(4500만원)로 레카네맙(1년치 2만 6500달러)보다 조금 비싸게 판매 예정입니다. 일라이 릴리는 도나네맙으로 연간 90억 달러(11조 3천억원)의 매출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젭바운드) 외에도 이런 가능성이 있어서, 과거 일라이 릴리를 긍정적으로 봤던 이유입니다. 



1년에 450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도나네맙보다 치매 예방 효과가 좋은 것이 있습니다. 잠을 잘 자는 것입니다. 잠을 잘 때 뇌의 크기가 살짝 줄어듭니다. 이때 뇌척수액이 물청소를 하듯이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서 간으로 보내 해독을 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사람이 잠에 들면 뇌에서 혈액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뇌척수액이 흘러 들어옵니다. 뇌척수액은 뇌 곳곳을 흐르며 신경세포의 활동으로 쌓인 노폐물을 뇌에서 밀어내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잠이 들어야 뇌의 신경세포 활동이 정지됩니다. 신경세포 활동이 멈춰야 산소 공급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면서 혈액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뇌척수액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뇌척수액이 주로 청소하는 노폐물은 아밀로이드였습니다. 치매 유발의 바로 그 아밀로이드가 맞았습니다. 림프관은 하수도처럼 액체와 물질을 수송하는 관입니다. 뇌척수액이 아밀로이드 같은 노폐물을 뇌의 림프관을 통해 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밀로이드는 숙면을 통해서 뇌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 여러 논문으로 확인되고 있는 중입니다. 2013년의 생쥐 연구는 사이언스지의 10대 연구성과 중 하나가 됐습니다. 제약사 입장에서 치매약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치료제가 아니라 치매 속도를 늦추는 약이라, 한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복용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보가 어느 선에서 약 값을 후려쳐서 일반인이 큰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게 만들지 궁금합니다. 충분한 수면도 치매 치료제만큼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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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5일 금요일

이기적 세상에서 살아남기: 팃 포 탯의 교훈

 오늘은 게임이론의 꽃 "팃 포 탯"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44년, 폰 노이만과 모르겐슈테른은 "게임 이론과 경제적 행동"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사람이 이기적이며, 손해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게임이론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게임이론은 처음에 군사학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가치가 인정되며 정치, 경제, 경영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게임이론의 기본 전제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나의 행동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상대의 대응에 따라 달라지므로, 상대가 어떤 대응을 할 때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행동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되면서 이들 간의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인 로버트 액설로드는 컴퓨터를 활용한 게임이론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대회는 서로 다른 전략으로 200회의 양자택일을 진행하고,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프로그램이 승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게임룰은 단순했습니다. 양쪽이 협력할 경우 각 3점, 한쪽이 협력하고 다른 쪽이 배신하면 협력한 쪽은 0점, 배신한 쪽은 5점, 양쪽이 배신할 경우 둘 다에게 1점이 주어지는 규칙이었습니다.


60여 개의 프로그램이 경쟁하는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전략은 무조건 상대방에게 협력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협력하면 둘 다 3점씩을 받아 200회를 협력하면 600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배신을 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무조건 협력하는 전략은 상대방이 배신할 경우 0점을 받으며, 배신하는 상대방은 5점을 가져갑니다. 이로 인해 협력만 하면 호구가 됩니다.



1위를 차지한 전략은 토론토 대학교의 라파포트 교수가 선보인 '팃 포 탯'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팃 포 탯(tit for tat)은 상대가 치면 나도 친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협력으로 시작하고, 상대방이 배신하면 즉시 보복하며, 상대가 화해를 요청하면 다시 협력하는 전략입니다. 상대방이 배신할 경우 즉시 보복하여 1점씩 받으며, 상대방이 협력하면 다시 협력하여 3점을 얻는 방식입니다. 팃 포 탯의 핵심은 상대방이 화해를 제안하면 뒤끝 없이 다시 협력하는 것입니다.



팃 포 탯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처음에는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최대한 협력합니다. 둘째, 상대가 배신하면 즉시 보복합니다. 셋째, 내가 보복한 후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요청하면 다시 협력합니다. 이 이론의 중요한 점은 내가 괴로운 만큼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팃 포 탯 이론은 미국 등 강대국들의 기본적인 외교 방안이 되고 있습니다. 무조건 잘해주고 상대방이 피해를 줘도 웃고 넘어가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호구가 됩니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필요는 없지만, 상대방이 고의적으로 피해를 입히면 확실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고 나오면 전처럼 대해주면 됩니다. 물론 마음은 전과 다르겠지만, 겉으로는 전과 같이 대해주면 됩니다.



팃 포 탯 이론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국가 간 외교는 상대방 국가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 이어집니다. 좁은 바닥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치는 관계에서는 "다음번에 두고보자"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한 번 보고 안 봐도 되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먼저 이익을 챙기고 관계를 끊는 배신자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 나쁜 사람들이 잘 사는 이유입니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어려울 때는 동업이 깨지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동업을 깨봐야 얻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동업은 성공했을 때 주로 깨집니다.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를 게임이론으로 보면, 뉴진스가 너무 성공한 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불만은 나눠 먹을 것이 있을 때 싹트기 시작합니다. 공평하게 1/N으로 나눈다고 사람들이 공평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기여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이며, 무작정 잘해주면 고마워하기보다 호구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 꼼꼼하게 계약을 점검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이기적이고 손해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유형은 현실세계에서 많이 보입니다. 착하기만 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에서, 좋은 관계는 내가 잘해줘서가 아니라 계약서가 꼼꼼할 때 오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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