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7월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9월 이후로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계산상의 문제가 아니라, 연준 의장 파월과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과거 연준의 실수인 볼커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볼커의 실수란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잡는 과정에서 연준이 저질렀던 실수를 말합니다.
1971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35달러당 금 1온스를 교환해 주는 금본위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월남전으로 막대한 전쟁비용이 발생하면서, 미국이 전쟁비용으로 달러를 마구 찍어내자 프랑스 등 몇몇 나라는 미국에 달러를 바꿔줄 만한 금이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등은 달러를 돌려줄 테니, 약속한 대로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금과 달러 교환을 못해주겠다고 선언하며 금본위제를 포기하였습니다.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부릅니다.
닉슨 쇼크 이후 금 1온스의 가치는 35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미국 달러 가치가 1/30 수준으로 폭락했음을 의미합니다. 달러 가치 하락은 달러로 물건을 사오는 미국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은 연준의 기존 목표인 인플레이션 방어에 최대 고용을 추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연준의 숙제를 늘렸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대량 실업을 우려해, 임금과 물가 통제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오히려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동의 석유 감산과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아서 번즈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근원 소비자물가 지수를 도입했는데, 이는 인플레이션 통계를 왜곡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카터 정부가 들어섰고, 카터는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볼커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올인하면서 기준금리를 17.6%까지 급격히 인상했습니다. 이로 인해 실업률이 급증하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경기 침체가 발생했습니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압력으로 볼커는 금리를 낮추기 시작했지만, 이는 볼커의 실수로 평가됩니다. 금리 인하로 잡힌 듯 보였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하면서, 볼커의 금리 정책 전환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고, 레이건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레이건은 재선 실패 우려가 있다는 참모들의 조언에도 연준에 터치를 하지 않는 기조를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연준 의장 자리를 유지한 폴 볼커는 금리를 더 올려버렸습니다. 1981년 6월, 기준금리를 9%대에서 19.1%까지 빠르게 다시 끌어올린 것입니다.
금리가 많이 오르자 이자를 낸다고 물건 살 돈이 줄어들어 경기가 박살 났습니다. 장사가 안되니 미국 중소기업의 40%가 망했고, 대기업도 이자 내면 남는 게 없다고 보고 투자를 포기했습니다. 실업률도 10%를 넘기 시작하면서 미국 제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기준금리가 올라가니, 제조업은 폭망했지만 비싼 이자를 노리고 미국으로 돈이 몰려오며 달러 환율이 다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연준의 과감한 금리 정책이 극심한 경기 침체를 불러왔지만, 동시에 달러화 강세를 가져오는 등의 상반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1981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예금이자가 높으니 돈들이 은행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시중 유동성이 은행으로 들어와 줄어들면서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이 1980년의 14.6%에서 9%로 꺾였고, 1982년에는 4%, 1983년에는 2.4%까지 떨어졌습니다.
볼커가 금리를 8% 밑으로 낮추며 본격적인 금리 인하에 들어간 것은 1985년 5월이었습니다. 볼커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79년부터 5년이 더 지난 이후였습니다. 인플레가 잡히자 미국은 긴축을 풀고 경기 부양을 다시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의 장기 호황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연준의 과감한 금리 인상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1980년대 이후 장기 경기 호황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경제적 고통이 수반되었음을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볼커의 고금리 정책 이후 1980년 817포인트까지 내려갔던 다우지수가 1983년 3월 1,130포인트까지 올랐고, 1987년 1월 8일에는 2,000선을 돌파하는 등 미국 경제가 장기 호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볼커가 유발한 국제적 금융 긴축은 소련의 경제 상황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고금리는 소련을 붕괴시켜 미국을 세계 원탑으로 만들었고, 레이건의 노림수가 적중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중남미와 동유럽, 아프리카 국가들의 달러가 미국으로 회수되고 외채 부담이 커지면서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사례들은 향후 정책 수립 시 참고할 만한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가 무조건 반복되는 것은 아니므로, 시대와 상황에 맞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선거가 11월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연준이 금리를 내리면서 경기 침체에 대비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습니다.
금리를 내리는 것은 좋지만, 금리 인하 직후 물가지수들이 뛰어오르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오히려 금리를 내리지 않은 것보다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금리 인하 후 인플레이션이 악화된다면, 이를 두고 '볼커의 실수 시즌 2'라는 비판이 쏟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는 6~7월에 금리를 내린 뒤, 대선 전까지 9~10월 사이에 인플레이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7월이 아니라 9월 중순경 금리를 내리는 등 타이밍을 늦추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연준의 정책 결정이 향후 대선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당국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의 균형을 잡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파월 연준 의장은 제대 말년의 병장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는 2022년 4년 임기의 연준 의장 연임에 성공했지만, 2026년에 임기가 끝나는 상황입니다. 연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며, 14년짜리 연준 이사 임기도 2028년 1월에 끝나 연장이 어려워 보입니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파월을 다시 연준 의장으로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현 바이든 정부와의 협력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파월은 더 이상 연임이 힘든 제대 말년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1953년생인 파월은 연준 의장 퇴임 후에도 현업에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따라서 재선이 힘든 대통령을 돕기 위해 볼커의 실수와 같은 오명을 남기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파월이 금리 인하에 신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는 듯했다가 다시 악화된 과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원하고 있어, 두 정책 기조 간 갈등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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