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요일

일본 라인 사태의 뒷이야기: 소프트뱅크와 네이버의 경영권 갈등

일본은 전통적으로 현금을 주요 결제 수단으로 사용해왔습니다. 거래에서 현금을 사용하는 비중이 80%를 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026년까지 현금결제 비중을 60% 밑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최근 모바일 페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자의 대표 서비스인 라인페이와 페이페이를 내세워 모바일 페이 시장 1위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라인은 일본에서 압도적 1위 메신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억 2200만 명의 일본 인구 중 9600만 명이 라인을 사용할 정도로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반면 소프트뱅크는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는 열세이지만, 검색엔진 야후를 보유하고 있어 일본 IT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 영역에서 1위였던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일본 모바일 페이 시장에서 맞붙게 되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두 기업 모두 시장 선점을 위해 라쿠텐페이를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자사 페이 서비스 페이페이의 시장점유율 1위 달성을 위해 '100억 엔 줘버리자 캠페인'이라는 엄청난 현금살포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에서 소프트뱅크는 페이페이를 통한 결제 금액의 20%를 포인트로 환원해주었는데, 그 한도가 무려 100억 엔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파격적인 캠페인 덕분에 '페이페이 대란'이라 불릴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캠페인 오픈 당일에는 페이페이 앱을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 판매점에 오픈런이 발생했고, 단 10일 만에 100억 엔이 모두 소진되는 대박 행진을 보였습니다. 

이에 힘입어 소프트뱅크는 이 캠페인을 2탄, 3탄으로 이어가며 현금 살포를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페이페이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자회사 페이페이에 무려 460억 엔이라는 막대한 실탄을 지원하며 강력한 현금살포 마케팅에 나섰던 것입니다.



페이페이의 '100억 엔 줘버리자' 캠페인이 성공을 거두자 라인페이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페이페이가 100억 엔 한도였다면, 라인페이는 무려 300억 엔을 투자하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라인페이는 '축! 레이와(일본의 새 연호) 모두에게 줄게. 300억 엔 축제'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에서 라인페이를 사용하면 1인당 1000엔 상당의 포인트를 무료로 지급했는데, 총 300억 엔 한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먼저 현금살포 마케팅을 펼친 쪽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기에, 시장점유율 3위였던 페이페이는 라쿠텐페이와 오리가미를 제치고 이용자 수 1위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4위였던 라인페이는 2위로 올라서게 되며 상위 업체들 간의 경쟁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페이페이와 라인페이가 모바일 페이 시장 1, 2위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 지출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는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각자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합병을 단행하게 됩니다. 

두 회사는 일본 모바일 메신저 1위 네이버의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야후를 통합해 '라인 야후'를 설립했습니다. 라인 야후에 대한 지배구조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대50의 비율로 A홀딩스를 만들고, A홀딩스가 라인 야후 지분 65%를 가지는 구조입니다.

다만 실질적인 경영권은 소프트뱅크가 가져갔습니다. A홀딩스 이사회 의장과 5명 이사 중 3명을 소프트뱅크에서 지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의 최종 실소유주인 손정의 회장은 한국 출신의 귀화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 국적에 대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또한 50대50의 동등한 지분구조는 향후 경영권 문제로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는 구조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식회사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이사 과반수를 차지해야 실질적 지배권이 있다고 봅니다.

비록 경영권은 소프트뱅크가 가졌지만 업무 분담에 있어서는 네이버가 개발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회사가 보유한 강점을 살리면서도 불필요한 경쟁은 줄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23년 11월, 라인 야후에서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소프트뱅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라인 야후에 대한 확실한 지분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시도였습니다.

현재 라인 야후의 지분 구조를 보면, 소프트뱅크가 50%, 네이버가 42.25%, 네이버 자회사 제이허브가 7.75%를 각각 보유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소프트뱅크가 1대 주주이지만, 제이허브가 네이버 100% 자회사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50대50 구도입니다.

문제는 만약 네이버가 2대 주주 지위를 내려놓게 되면, 재무제표상 A홀딩스가 네이버의 관계회사에서 제외되면서 라인 야후의 실적이 네이버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의 지분을 추가 인수하여 확실한 주도권을 가져오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주 지분율과 실질적 경영권 문제가 라인 야후 합병 당시부터 지적됐던 부분인데, 결국 고객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그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셈입니다.




2023년 말, 한국 네이버의 클라우드 서버가 해킹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네이버의 내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던 일본 라인의 사용자 정보 약 50여만 건이 유출되었습니다. 유출된 정보는 이용자의 연령, 성별, 라인 스탬프 구매 이력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해킹 사건을 계기로 2024년 3월, 일본 총무성은 라인 야후와 네이버에 행정조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내용은 두 회사의 시스템을 완전히 분리하고, 네이버가 라인 야후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총무성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라인 야후가 고객 정보 관리를 위탁하는 곳이 네이버인데, 위탁업체인 네이버에 대해 적절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라인 야후와 네이버 간에는 조직적, 자본적으로 상당한 지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라인 야후가 네이버를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총무성은 라인 야후가 네이버에 안전관리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거나, 지배구조를 바꿔 위탁업체로서 네이버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정의는 젊었을 때부터 '인생 50년 계획'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대에 이름을 날리고, 30대에 최소 1천억 엔의 자금을 마련한 다음, 40대에 사업에 승부를 걸어 50대에는 연매출 1조 엔 사업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60대가 되면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실제로 손정의는 50대까지 계획했던 바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목표인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것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1957년생인 그는 2018년부터 60세가 넘어서면서 투자 실적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소프트뱅크는 실탄은 많지만 투자 성적이 좋지 않아 어려운 경영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에 손정의가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든 라인 야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라인을 가져오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편 일본 정부가 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지분구조 문제까지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지나친 개입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대책 수립과 벌금 등의 행정조치는 가능하지만, 지분까지 거론한 것은 무리한 창구지도로 비쳐지는 것이죠. 

특히 비록 라인 야후의 경영권은 형식적으로 반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소프트뱅크에 넘어간 상태입니다. 하지만 손정의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 보면 순수 일본인이 아닌 탓에 국적 문제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주제의 다른 포스팅들:

중국 초저가 쇼핑앱 '테무'의 배경과 위험성

에너지 대전환 시대, 핵융합과 SMR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

샘 알트만의 에너지 혁신: 소형원자로(SMR)와 사용후 핵연료의 재활용을 향한 도전

벤츠의 내연기관 시대 연장과 전기차 확산의 우여곡절 

EU's Fine on Apple: What Changes Can We Expect in the Competition with Spotify?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