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HLB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였습니다. 메릴랜드주 내에서 유일하게 흑인 빈민들을 받아주던 존스홉킨스 병원이 있었고, 1951년 2월 8일, 헨리에타 랙스라는 31살 흑인 여자가 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자궁에서 종양을 발견하고 검사를 위해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이 종양은 악성종양으로 밝혀져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고, 3개월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검사 샘플로 채취한 암세포가 죽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3-4일이면 시험관에서 죽는데, 이 암세포는 계속 성장을 했습니다. 병원은 이 죽지 않는 암세포를 헨리에타의 이름을 따서 Hela 세포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죽지 않고 성장을 계속하니 처치 곤란해진 여유분 암세포를 주위 병원과 연구소에 무료로 나눠주었습니다. 70년 이상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세포는 살아있으며, 세계적으로 5천만 톤이 배양되었습니다. 이 세포로 11,000개의 특허와 7만 건의 연구논문이 나왔고, 2명의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소아마비 백신도 이 세포 덕분에 만들어졌습니다. 암세포가 안 죽고 계속 성장하는 성질이 인간의 수명 연장과 노화 방지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암세포는 죽어야 할 세포가 안 죽고 계속 살아남으면서 옆의 정상세포들을 암세포로 만드는 점에서 좀비와 비슷합니다. 초기에 좀비가 몇 마리밖에 없을 때는 퇴치가 가능하지만, 마을을 다 집어삼키고 다른 마을까지 퍼져가면 해결책이 없게 되는 것처럼, 암세포도 초기에는 제거할 수 있지만 퍼지면 치명적입니다. 암세포는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며, 대부분 혈관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암세포가 커지려고 해도 주위에 혈관이 커지지 않으면 성장 속도가 느려집니다. 이럴 때 암세포는 영양분을 더 많이 먹기 위해 새로운 혈관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암은 세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생기지만 주로 빠르게 성장하는 부위에서 자기도 같이 빠르게 성장합니다. 예를 들어, 뇌는 어릴 때 대부분 성장해서 뇌종양은 주로 아이들에게 많이 보입니다. 성장이 빠른 젊은 사람이 암에 걸리면 암세포도 빨리 커져서 빨리 사망하게 됩니다. 반대로 노인은 성장이 느려서 암도 천천히 커지기 때문에 같은 암에 걸려도 노인은 오래 살 수 있습니다.
1세대 항암제의 경우 빠르게 성장하는 암세포의 특성에 맞춰 빠르게 성장하는 모든 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이어서, 성장 속도가 빠른 모근도 암세포로 취급되어 머리카락이 빠지게 됩니다. 암세포가 성장을 하면서 엄청난 영양분을 소모하기 때문에 살이 빠지는 것이 보통 초기 증상입니다. 괜히 살이 빠지면 병원에 가보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900년만 해도 인간의 사망원인 1위는 독감, 2위는 결핵, 3위는 감염이었고, 암은 순위권 밖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암에 걸리기 전에 다른 병으로 사망했지만, 인간이 오래 살면서 암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망원인 압도적 1위가 암입니다. 암은 수술 외에 항암제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항암제는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뉩니다. 1세대 항암제는 화학항암제로,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암세포와 정상세포 구별 없이 공격하는 항암제입니다. 이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지고, 불임이 되며, 구토와 영양실조 등 부작용이 많습니다. 2세대 항암제는 표적항암제로, 특정 암세포만 공격하는 대신 부작용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다양한 암에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3세대 항암제는 면역항암제로, 정상세포로 위장한 암세포의 위장을 벗겨 몸의 면역기능이 암세포를 공격하게 합니다. 1세대처럼 대부분의 암에 효과가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적습니다.
미국의 의학자 H.K. I r n은 천연두 백신인 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해 3세대 항암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이 펙사백입니다. 펙사백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우두 바이러스의 유전자 중 하나를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암 환자에게 우두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암세포와 정상세포 구별 없이 우두에 감염되는데, 이때 우두 바이러스로 바꿔치기된 유전자가 암세포의 위장을 벗겨 면역세포가 먹기 좋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K i r n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상업화하기 위해 제너렉스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동아대에 있던 치과의사가 펙사백을 접하고 영감을 받아, 동료 의사들과 함께 20억을 만들어 동아대 창업 지원센터에 제너렉스의 하청회사를 세우고 미국 본사의 시험을 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회사 이름은 신라 처용가에 있는 천연두 역신 설화와 본사 제너렉스를 합쳐서 신라젠이라고 했습니다.
2010년까지 신라젠은 별다른 활동이 없는 대학교 창업회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초, 하청이던 신라젠이 본사인 제너렉스를 300억에 인수하고, 한 치과의사가 대표로 등장했습니다. 300억은 선금이었고, 펙사백이 3상을 통과하면 1,200억을 더 지급하기로 되어 있어 최대 1,500억짜리 거래였습니다. 대표는 서울 신월동에서 개인 치과병원 원장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300억을 만들 만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보험모집인 출신의 한 인물이 다단계 벤처 투자 회사를 만들어 3천 명의 모집책을 동원해 7천억 원의 투자금을 모았고, 이 중 일부를 신라젠에 투자해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2018년 12월, 이 투자책은 7천억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고, 징역 12년을 받았습니다. 신라젠의 주가는 만 원짜리 주식이 15만 원까지 오르며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간암 대상 임상 3상 시험을 하던 펙사백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수준으로 효능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주가는 1만 원대로 급락하며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았고, 일부는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신라젠은 2021년 5월 31일, 엠투엔이라는 철강재 포장 용기를 만드는 회사가 600억을 넣어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엠투엔은 자회사로 대부업체인 리드코프를 두고 있으며, 오너가 한화 회장의 처남이라 자금조달 역량이 있는 곳입니다. 펙사백은 단독 효과보다는 다른 항암제와 섞어 쓸 때 부작용 없이 항암 효과를 올릴 수 있는 일종의 칵테일 효과가 있어 시장성이 남아 있습니다. 2023년 11월, 신라젠은 펙사백과 리브타요(면역관문억제제)의 칵테일 투여 임상 2상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95명의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특별한 부작용 없이 22개월 정도 생존기간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신라젠은 이를 기반으로 미국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와 기술이전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결과는 지켜봐야 합니다. 리제네론은 시가총액 113조 원의 미국 바이오기업으로, 리브타요를 프랑스 사노피로부터 매입한 곳입니다. 리
브타요는 피부암과 폐암에 대한 적응증만을 보유 중이지만, 펙사백을 활용해 적응증을 확대하려는 니즈가 있습니다. 임상 3상부터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리브타요를 보유한 리제네론과 협업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신라젠 주가는 4천 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노화로 인해 무릎의 연골이 손상되어 잘 걷지 못하게 되는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로 인보사가 개발되었습니다. 인보사는 연골을 성장시키는 세포를 무릎에 주사해 치료하는 방식으로, 2017년에 식약처 승인을 받아 국내에서 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수출을 위해 FDA에 승인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인보사는 두 가지 액체를 섞어서 주사하는데, 1액은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인간의 연골세포이고, 2액은 연골이 재생되는 활성화 물질을 넣은 유전자 조작 연골세포입니다. 그러나 2액이 연골세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2액은 사산한 태아의 콩팥에서 추출한 콩팥 세포였던 것입니다. 이 태아 콩팥 세포는 293이라고 불리며, 293번째 실험에서 우연히 발견된 세포라서 293이 되었습니다. 293세포는 관리가 쉽고 잘 자라서 연구실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293세포는 정상 세포로 시간이 지나면 죽어버립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93세포에 Hela 세포의 발암유전자를 넣어 암처럼 안 죽고 무한 증식하게 만들어 사용합니다. 연골세포를 증식시키려고 293세포를 사용했는데, 나중에 보니 연골세포는 하나도 없고 293세포만 남아있던 것입니다. 연골세포가 아닌 사산한 태아의 콩팥세포가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된 것입니다. 2017년 연말에 시판되었고, 1대 맞는 데 700만 원으로 고가였지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식약처는 293세포 문제를 알게 된 후 인보사의 품목허가와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취소했지만, 이미 3천 명 이상이 주사를 맞았습니다.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콩팥 세포로 만든 암세포를 무릎에 넣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를 강제로 임상시험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인보사 주사를 맞은 3천여 명 중 현재까지 90명 이상에게서 종양이 발생했습니다. 인보사의 약효가 없는 약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https://www.mk.co.kr/news/society/10832354
2021년부터 분위기가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4월, 미국 FDA는 인보사에 대해 임상시험(환자투약)을 계속해도 된다는 리무버 클리니컬 홀더(Remove Clinical Hold)를 승인했습니다. 임상 1·2상 시험 결과를 유지하면서 3상 시험을 재개해도 된다는 내용입니다. 3상이 시작되었고, 2026년에 3상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관련 재판들도 대부분 3상 결과를 보고 결정될 것입니다.
신라젠과 인보사를 언급한 이유는 신약을 개발하고 승인받는 것이 매우 어렵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라젠과 인보사에 이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HLB의 신약 리보세라닙도 그 예입니다. 리보세라닙(Rivoceranib)은 국제일반명(INN, International Nonproprietary Name)으로, WHO가 의약품 성분을 혼동 없이 구분하기 위해 분류한 체계로 만든 이름입니다. 국제일반명이 같으면 같은 성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학계에서는 국제일반명을 사용하고 상품에는 별도로 개별 이름을 붙입니다. 국제일반명에서 끝이 중요한데, 리보세라닙에서 닙(-nib)은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억제하는 성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닙이 붙어 있으면 암치료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보세라닙은 중국과 미국 제약사에 근무했던 중국계 미국인 G. Paul Chen이 개발한 신약입니다. HLB(현대 라이프 보트)는 구명정과 요트를 만들던 회사로, 바이오에 뛰어들면서 리보세라닙의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판권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HLB는 중국법인 등이 가진 리보세라닙에 대한 중국 판권 등도 추가로 확보하여 전체 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HLB가 직접 신약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특허와 판매 권리를 산 것입니다. 2019년 6월, 리보세라닙이 임상 3상에 실패했습니다. HLB는 리보세라닙 단독으로 진행된 임상에 실패한 후,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을 섞어 쓰는 칵테일 요법으로 재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캄렐리주맙은 중국 항서제약이 개발한 신약으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도와주는 면역관문억제제입니다. 2022년, 두 약을 섞어 쓰는 칵테일 요법으로 간암 3상을 완료하여 2023년 5월 미국 FDA에 신약 허가 신청서(NDA)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FDA는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칵테일 요법의 간암 1차 치료제에 대해 1년 만에 CRL 회신을 보냈습니다. CRL은 보완 요구 서한으로, FDA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첫 번째는 임상 기관을 확인하는 실사인데, 우크라이나 병원들이 전쟁 중이라 실사를 갈 수 없었고, 두 번째는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제조공정이 FDA를 만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HLB는 이틀 연속 하한가를 맞게 되었습니다. HLB가 FDA의 지적사항을 수정 보완한 NDA를 재접수하면, FDA는 재접수 후 6개월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첫 번째 지적사항은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과 관련한 내용으로, FDA는 항서제약을 실사하는 과정에서 캄렐리주맙의 화학, 제조, 품질관리(CMC)에 보완 요청을 했고, 보완이 되지 않았습니다. CMC는 생산 시설을 방문해 임상에 제출된 약품이 공장에서 동일한 품질과 조건으로 양산 가능한지 검사하는 것입니다. 보완 요청을 반영하더라도 생산시설 재검사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지적사항인 우크라이나 임상 병원의 실사 불가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7개 병원에서 임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전쟁 중이라 실사가 힘들다면 다른 병원의 임상을 추가해 대체해야 합니다.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보완 및 재검사, 재허가 심사 기간 등을 감안하면 몇 달 만에 끝날 일은 아닙니다. 미국은 최근 중국 제약 및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은 이미 중국에서 의약품으로 허가받아 처방되고 있는 약들입니다. 미국과 중국 간 정치적 이슈 등이 FDA 승인에 추가적인 장애 요인이 될 가능성도 감안해야 합니다.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은 중국에서 몇 년간 처방되고 있는 약들이라 일반적인 신약보다는 FDA 승인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해결할 부분이 적지 않고, 수년간 적자인 상태에서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버텨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간 정치적 마찰 등 변수도 많습니다. 임상시험에 들어간 암 치료제 신약이 3상을 통과해 FDA 승인을 받고 시판될 확률은 3.4%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신약 승인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고, 제약업에 대한 투자는 신약보다 드러그 리포지셔닝을 주목하는 것이 좋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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